본기가 만들어내는 저역은 압도적이란 형용사를 붙여야만 될 정도로 강력했다. 구경 14cm에 불과한 미드 우퍼 2발이 만들어내는 저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양감이 풍부한 저역이었다.
경우에 따라 소리를 듣지 않고도 메이커명만 보고 제품의 성격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PMC 스피커가 바로 그렇다. PMC는 ‘Professional Monitor Company’의 약어이기 때문이다.
탄노이와 로하스(로저스, 하베스, 스펜더)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사운드는 아담하고 달콤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사운드 스테이지를 그리는 능력이나 정확성보다는 질감에 주안점을 둔 소리다. 이외에도 KEF, 루악, 캐슬, 린, 모니터 오디오, 레가 등 대부분의 영국 스피커들은 크고 작던 간에 기본적으로 브리티시 사운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브리티시 사운드는 꽤 오랫동안 영국 본토는 물론 전 세계, 특히 동양권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행이나 취향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에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선도적인 메이커는 ATC와 B&W였다. 이들 메이커에서 만든 스피커는 기존의 브리티시 사운드에서 벗어난 소리로, 우리는 이런 소리를 모니터적인 소리라고 부른다. 모니터적인 소리는 한마디로 악기나 사람 목소리의 정확성에 주안점을 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ATC와 B&W에 비해 후발주자이지만 PMC도 영국을 대표하는 모니터 스피커 메이커이다. 그러나 이들 세 메이커는 모두 모니터적인 소리를 표방하지만 소리는 다르다. 다만 강력하면서도 풍부한 저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닮았다고 하겠다.
PMC의 창업 비화는 PMC 제품의 성격 파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소개해 보기로 하자. PMC 창업의 주역인 피터 토마스(Peter Thomas)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BBC에 입사해 BBC에 납품되는 각종 방송장비와 스튜디오 기자재를 선정Ÿ검수Ÿ보수하는 직책에 근무하게 된다. 이때 공동창업자인 아드리안 로더(Adrien Loader)를 만나게 되는데, 당시 아드리안은 방송국이나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수입 판매하는 FWO 부쉬라는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BBC에 납품하는 일에 종사하고 피터는 납품받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서로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둘은 오디오파일이다 보니 서로 급격하게 친해지게 되면서 스피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이 보기에는 방송국이나 녹음 스튜디오에서 주로 사용하는 프로용 스피커는 정확하고 디테일하기는 하지만 질감이 부족하고 반대로 홈 오디오용 스피커는 정취가 있는 소리지만 정확성과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두 사람의 생각이 같다 보니 프로용 스피커와 홈 오디오용 스피커의 장점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스피커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연구한 산물이 바로 ATL(Advanced Transmission Line) 방식이다. 트랜스미션 방식은 과거 영국의 TDL에서 채택했던 방식이지만 PMC에서는 이를 개선해 ATL이라고 명명하고 특허를 보유함으로써 PMC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피터와 아드리안이 의기투합해 만든 첫 작품은 BB5모델인데, 이 모델을 BBC에 검증을 의뢰한 결과 바로 합격했다는 통지서와 함께 구매제의를 받게 되었다. 어떤 제품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방송국에서 모니터로 사용된다는 것은 성능에서 공인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영국의 BBC라면 더욱 더 그렇다. 아무튼 첫 출발치고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인데, 문제는 피터가 BBC 소속의 직원으로 있는 한 BB5를 BBC에 납품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피터는 BBC를 퇴사하게 되고, 첫 작품인 BB5는 BBC는 물론 메트로폴리스라는 유명한 스튜디오에 납품됨에 따라 일약 PMC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컨슈머 시장까지 진입하게 되었다. 10년 전 아드리안은 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지금은 피터 혼자서 설계와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 사세도 커져 현재 BBC는 물론 헐리웃의 많은 스튜디오에서도 영화 녹음을 위해 PMC 스피커들이 사용되고 있다. 가령 영화 <헐크>를 비롯해 <007 다이 어나더 데이>, <시카고>, <스파이더맨> 등이 PMC 스피커로 모니터해서 완성된 영화이다. 또한 유명한 뮤지션인 칙 코리아를 비롯한 브라이언 메이도 자신의 음악 녹음을 위해 PMC 스피커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현재 전 세계를 통 털어 방송국과 녹음 스튜디오, 레코드사, 심지어 레스토랑과 디스코텍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스피커는 PMC 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성장했다.
최근 들어 구 모델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중요한 개선 사항은 캐비닛의 재질을 퀄러티가 높은 재질로 바꿨고, 개량된 유닛을 탑재했다. 트위터의 경우 시어스와 협력해 제작한 소노렉스(Sonolex)를 사용함으로써 파워 핸들링이 증가했을 분만 아니라, 고역의 대역폭을 30kHz까지 신장시켜 사운드 이미징이 더 정확해졌다. 또한 미드레인지 부분에서는 내부의 쳄버를 저음부와 분리시켜 음향적으로 정밀해져 트랜스미션 라인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PMC의 제품 라인업은 매우 다양하다. 하이파이용만 하더라도 저가의 보급 모델부터 고가의 하이엔드 모델까지 총 14개 모델이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어 사용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데, 최근에는 팩트(Fact) 시리즈를 선보였다.
PMC의 자료에 의하면, 팩트 시리즈는 완전히 컨슈머형으로 제작한 모델로 정통 브리티시 스타일을 많이 따랐다고 한다. 인클로저 재질의 고급화를 비롯해 개선된 유닛의 탑재 등, 앞에서 언급한 개선사항을 모두 적용한 것이 바로 이 팩트 시리즈라는 말이다. 중요한 사항은 중역의 소리가 좀 더 앞으로 나오도록 튜닝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중요한 변화로 여겨진다. 이 팩트 시리즈에는 본기가 팩트 8과 팩트 3이 있는데, 둘 다 플로어 스탠딩 타입으로 설계되었다.
본기인 팩트 8은 2웨이 3유닛 방식으로 설계된 톨보이형 디자인이다. 전면 배플 하단에 타원형으로의 음향출구가 있다. 후면에는 은도금된 2쌍의 바인딩 포스트 단자가 부착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하이와 로우레벨을 설정할 수 있는 토글 스위치가 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스위치를 이용하면 하이는 2dB 정도 부스트 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고, 로우는 3dB과 6dB을 감소시킬 수 있어 사용자의 취향이나 리스닝 룸 공간에 맞게 다양하게 튜닝할 수 있다. 유닛 간의 이음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네트워크는 24dB 옥타브의 슬로프로 설계되었다.
본기에 패스 INT-30A 인티앰프를 물리고 시청에 임했다. 첫 곡인 다비드 가렛의 세레나데가 흘러나오자마자 본기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성격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본기의 성격은 ‘다이내믹하면서도 큰 스케일을 연출하는 스피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본기가 만들어내는 저역은 압도적이란 형용사를 붙여야만 될 정도로 강력했다. 구경 14cm에 불과한 미드 우퍼 2발이 만들어내는 저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양감이 풍부한 저역이었다. 그러다보니 곡에 따라서는 저역이 너무 과하지 않은지 의심(?)과 걱정이 될 정도로 강력한 저역이었다. 통상 백 로딩형이나 미로형으로 설계한 스피커의 저음은 깔끔하지 않고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저음인데 반해 본기에서 만들어지는 저음은 비교적 깨끗한 저역이었다.
다행히 울리기도 별로 어렵지 않은 스피커로 보였다. 메이커에서 제공한 스펙에 의하면 40~300W 출력의 앰프를 권장하고 있지만, 본 시청의 결과에 의하면 30W(순A급 출력) 출력의 앰프로도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본기의 후면에 부착된 로우 설정을 6dB 감쇠시키고 동일한 곡을 들어보았는데, 큰 차이는 아니지만 필자가 듣기에는 저역을 감쇠한 소리가 더 듣기 좋았다. 또한 하이는 부스트 시키지 않고 시청했는데도 에너지가 실린 소리가 바로 귀에 도달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직진성이 강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중역을 좀 더 앞으로 나오게 튜닝한 결과로 여겨진다.
본기는 크기에 비해 큰 사운드 스테이지와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연출하기 때문에 비교적 큰 리스닝룸이 필요할 것 같다. 메이커에서는 브리티시 사운드가 가미된 튜닝을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역시 모니터적인 성향이 강한 스피커였다. 음악 장르를 특별히 가리는 스피커가 아닌 올라운드 플레이어인데도 팝이나 재즈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은 것을 보면 필자의 선입견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본기는 영국의 잡지 리뷰에서 별 5개를 받았다는 점을 첨언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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