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1일 수요일

엘락(ELAC) 톨보이 스피커 FS607 CE

지금은 통의동으로 이전하였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내 사무실 겸 마스터링 스튜디오는 광화문의 용비어천가라는 오피스텔의 17층에 있었다. 그곳에서의 많은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7층에서 커다란 창문으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이었다. 해가 조금씩 뉘엿뉘엿 지는 저녁 5시 30분부터 해가 지기 직전의 오후 6시 후반까지의 풍경이 특히나 아름다웠다. 거의 모든 건물들의 창문의 불빛이 꺼지기 전 그 풍경은 지금도 그리운 추억이다. 그곳에서 참 많은 오디오 기기들이 다녀갔다.

직접 사용했던 B&W 802D나 소너스파베르의 아마티 애니버사리오. ATC SCM100A. 그리고 리뷰용으로 들었던 수많은 스피커들. 그 중에서도 리뷰용 스피커 중 가장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소개하는 엘락의 FS607CE의 전작인 FS607이었다.


직사각형의 긴 오피스텔 방 한가운데 이 엘락의 FS607을 세팅해두고 늦은 시간까지 퇴근도 하지 않은 채 거의 일주일동안 음악과 소리에 푹 빠져 보냈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번에 다시 만난 엘락은 너무도 반가웠다. 아마도 내가 리뷰한 스피커 중 이 모델은 손꼽힐 만큼 기억에 남는 제품. 추억 어린 사무실의 기억과 함께 있는 제품이다.

잠시 전작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우선 저렴한 인티 앰프로도 너무나도 간단히 쉽게 울려주었고 슬림한 사이즈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하고 아래까지 묵직하게 내려가는 저역을 들려주었다. 이것은 B&W나 그 밖의 최근 하이엔드 성향의 스피커들이 들려주는 단정한 저음과는 전혀 성향이 다른 정말 저음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서 스피커 사이에 이미지 하고 있는 소리. 그러면서도 고역은 저역에 마스킹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쭉 뻗어나가는 소리.



중역은 결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메마르지 않고 저역과 고역의 든든한 브리지 역할을 하면서 음악의 핵심은 정확하게 파악해서 들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앰프 매칭에 따라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엘락 스피커에서는 저역도 고역도 아닌 '중역의 순도와 질감의 차이'. 한겨울에 눈송이들이 돋보기로 확대되어 하늘에서 흩날리는 것 같은 최근의 차가운 성향의 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온기가 있으면서도 음악을 너무도 활기차고 즐겁게 들려주는 엘락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좋았던 감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번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소리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딱딱한 사각형의 전통적인 나무상자의 느낌이 살아 있는 인클로저의 스피커를 좋아하는(예를 들어 탄노이.현재 집에서는 탄노이 레드를 사용하고 있다) 내 취향으로는 조금은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엘락의 인클로저가 갖고 싶은 충동을 벗어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사이 결혼을 하고 이사를 가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작아지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엘락 스피커를 한번 사용해볼까 하는 것이었다. 슬림한 인클로저에서는 결코 상상하지 못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그러면서도 하이테크한 외관과는 다르게 복고적인 향수가 있는 소리를 머금고 있는 이 엘락 스피커 607 제품을 마음속에 두고 있던 차에, 하이파이클럽의 리뷰로 바로 이 스피커를 만나게 되었다.

전작이 조금 가벼운 느낌의 디자인이었다면 전반적으로 좀 더 어두워진 이번 신형의 모습이 중량감이 느껴지고 차분해보여서 더 좋다. 변함없이 지나치게 모던하기는 하지만…. 맨리의 레퍼런스급 분리형 앰프와 매칭해서 소리를 들어보았다. 먼저 앰프가 다른 탓인지 내가 생각했던 기억의 소리와는 많이 다르게 들리는 것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지난 사랑이 내 마음속에서 더욱 미화가 되어 실제와는 전혀 다른 가상의 세계와 추억을 혼자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일까. 특히 구형 제품과는 질감의 표현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데, 부드럽고 매끄러운 중역의 소리를 들려준 데 반해 이번 신형은 중역이 약간 돌출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맨리 앰프의 성향으로도 예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역과 저역이 분리되어 따로 놀지 않고 이음새는 매끄럽게 연결된다.

변함없이 사이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낮은 저역이 나온다. 이 부밍 없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저역은 참으로 엘락의 상위 제품들의 커다란 장점이다. 이렇게 양감이 충분하면서도 저역에 대한 컨트롤이 잘 되어 있는 오디오 제품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역을 제한하고 단지 해상력만 높이는 것에 비해서 이것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튜닝이란 생각이 든다.



녹음과 마스터링 작업을 할 때도 늘 어떤 스피커에서든 무난하게 재생을 잘해주는 고역에 비해서 음악을 듣는 시스템이나 환경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소리를 들려주는 저역, 특히 낮은 저역의 사운드를 제대로 조정할 수 있기까지는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이지만 미소음량에서의 표현력이 아주 뛰어나다. 실제로 많은 가정과 음악을 듣는 곳에서 커다란 음량으로만 늘 음악을 듣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작은 음량에서도 충분한 음악과 음향적인 느낌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밸런스'와 더불어 하이엔드 오디오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엘락의 FS607CE는 커다란 음량에서의 오디오적인 쾌감 외에도 작은 음량에서도 중역만 남아 앙상한 소리를 들려주지 않고 음악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이 된다. 특히나 작은 볼륨에서도 저음의 밸런스감은 놀라우리만치 탁월하다. 다만 이렇게 저역이 많은 특성 때문에 두 스피커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저역이 뭉쳐서 전반적으로 소리가 탁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두 스피커 사이가 어느 정도는 떨어지는 것이 더 좋다(적어도 3미터 이상).



사실 구형 모델에서는 두 스피커의 거리가 좁아도 변하지 않는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번 신제품은 구형에 비해서 바닥 쪽에 저음반사 포트가 들어 있기 때문에 두 스피커의 간격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스파이크의 높이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스피커에 바닥에 있는 저음반사 포트에서의 느낌은 예상외로 어느 정도 볼륨을 올리면 그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바닥의 재질에 따라서 저음의 질감이 미묘하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구형 모델에 비해서 세팅은 좀 더 까다로워졌지만, 그만큼 오디오적인 재미와 함께 섬세함이 증가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재생했을 때 오디오파일들이 사랑하는 음악 장르인 클래식과 재즈 음악에서 정말 좋다. 클래식의 경우 독주와 실내악, 그리고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모든 분야를 아울러 완벽하게 적응된 소리를 들려준다.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엘락 스피커의 팬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에 관해서는 아마도 좋은 이야기만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대편성을 들어보면 북쉘프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몸을 진동하는 듯한 저역이 뿜어져 나온다. 큰 스피커로 음악을 듣다 보면 작은 스피커의 정교한 이미징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엘락의 신형 FS607CE는 대는 소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탄탄한 피라미드형 음향 밸런스를 바탕으로 정교한 이미징. 상하좌우의 펼쳐지는 스테이지 능력 등 여러 가지 음향적인 분야들을 골고루 충족시켜 준다.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을 생각하면 중역이 약간 거칠게 들린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중역이 아주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주는 탄노이나 혹은 쿼드의 평판형 스피커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서 조금 거칠게 들리는 것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명확하고 선명한 중역의 소리로 들릴 것이다. 제조사에서는 고맙게도 중역을 ±1dB정도 증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디폴트 상태에서 소리를 들었지만 상황에 따라서 중역을 조금 줄여보거나 혹은 매칭에 따라서 조금 올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1dB라는 숫자는 음향의 세계에서는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역에서의 1dB와 중역에서의 1dB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사람의 귀는 저역과 고역에 비해서 중역에 대한 감도가 훨씬 더 높고 그로 인해 중역의 음량차이를 쉽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옵션 사항으로 무지향성 슈퍼트위터를 더할 수 있는데 공간에 따라 슈퍼트위터를 살짝 더 하는 편이 중역의 질감을 더욱 더 부드럽게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엘락은 아직 국내에는 많은 사용자들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모던한 디자인의 외관이 크게 마음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스피커에서 분명히 많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오디오 생활 가운데 엘락 스피커를 만나게 된다면 꼭 한번 관심어린 시선을 두기 바란다. 분명히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소리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정훈-

Dimensions H × W × D 1,155 × 319 × 354 mm
Weight 37 kg
Principle 3½-ways, bass reflex
WoofersBass Ports 2 × 180 mm AS-XR cone, LLD
1 × 60 mm with Bass Control Plug
1 × 100 mm (down firing)
Midrange 1 × 50 / 105 mm ring radiator withnomex honeycomb crystal membrane
Tweeter 1 × JET III
Recom. Amplifier Powerat Nominal Impedance 80-400 W / channel
Crossover Frequencies 150 / 550 / 2,700 Hz
Sensitivity 89 dB / 2.83 V / 1 m
Nominal Impedance suitable for amplifiers (from ... to) 4 Ω / 4 ... 8 Ω
Minimum Impedance 3.4 Ω at 85 Hz
Frequency Range acc. to IEC 268-5 28 ··· 50,000 Hz
Nominal / Peak Power Handling 200 / 250 W



P 박인혁 실장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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