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순수함으로 빚은 우아함
WE 300B 출력관을 모르는 오디오 애호가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처럼 무식한 질문이 어디 있느냐 하는 반문이 필자에게 바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웨스턴 일렉트릭에서 1936년에 발표한 WE 91B 파워 앰프의 오리지널 버전을 들어 보았는가? 아니, 웨스턴 일렉트릭 전문가의 복원작업을 거쳐, 어떤 시각으로 보아도 밸런스가 제대로 잡힌 음향을 이끌어 내는 오리지널 WE 91B파워 앰프를, 최소한 두 세트 이상 들어 보았는가? 본지의 독자들의 수준을 과소평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1990년대 초반 세 세트의 WE 91B에서 최악에서 최고의 음향까지 두루 경험해 본 필자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오리지널 앰프세트와 유사한 음향을 이끌어 내는 기성품300B 파워 앰프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렇기로 치면, 간혹 주변에서 접하는 ‘고물’ 오리지널 91B가 들려주는, 300B특유의 관능미만 남아 있는 너덜너덜한 음향을 감상하는 것은 그보다 더 한 악몽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자칫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이처럼 서슴없이 내뱉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300B에 대한 새로운 표준 음향을 규정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광활할 수 없는 음향 무대, 그보다 더 강력할 수 없고 유연할 수 없는 다이내믹, 그보다 더 요염할 수 없고 화려할 수 없는 고음역, 그보다 더 유려할 수 없는 낭랑한 중음역, 그리고 음악을 노래하는데 필요한 중량감이 제대로 실려 있는 저음역 들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연출하는 출력관이 아니라, 3극관 특유의 소박함과 섬세함을 전면에 배치한, 관능미 넘치는 음향이 라는 관점으로 300B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기본 입장인 것이다. 기성품 앰프라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관능미가 물씬 풍기는 고혹적인 고음역과 유려한 중음역, 사뿐한 저음역 등을 유려한 발성 속에 소담스럽게 용해하는 출력관으로 300B를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론이 다소 길어진 것에 대해서는 독자 제현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300B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의 트라이어드에서 내놓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TRV-A300SE가 추구하는 음향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300B의 해로운 표준 은향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TRV-A300SE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기성품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탐미주의 음향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300B 앰프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새로운 300B 싱글 앰프들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연출하는, 아기자기한 선율미와 섬세한 색채표현 사이의 유연한 통합을 추구하는 인티그레이티드 앰프가 바로 TRV-A300SE인 것이다. 이럴 때 TRV-A300SE에 담긴 기술 내용이 궁금해진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자기 바이어스 싱글 구동 방식을 채택하여 순A급으로 채널당 8W의 출력을 이끌어 내는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TRV-A300SE는 ‘300B 진공관의 특징이 사라지지 않게 표현하기 위하여 설계된 일품(逸品)’ 이라는 자랑과 함께, 자기 바이어스 회로를 채택한 트라이어드 최초의 앰프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로를 채택한 이유에 대하여 300B 진공관을 솔직하게 구동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앰프는 음악 신호의 응답 특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채용하였고, 고품질의 커플링 콘덴서와 KOA의 고품질 카본 저항을 사용하여 음향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TRV-A300SE에 대한 설명이 너무 소략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기술 내용에 대한 설명이 장황할수록 음향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 300B앰프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워낙 인지도가 높은 출력관을 채용한 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또 그런 만큼 음향의 완성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이 바로 300B앰프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 높지 않은 판매 가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TRV-A300SE는 300B앰프의 입문 기종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이유는 트라이어드의 카탈로그만 살펴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현재 트라이어드에서는 300B푸시풀 구동으로 채널당 20W를 이끌어 내는 모노럴 파워 앰프인 TRV-A300SE, 그리고 푸시풀 구동으로 채널당 20W를 이끌어 내는 스테레오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VP-300BD 등과 같은 TRV-A300SE의 상위모델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TRV-A300SE는 95dB 이상의 고능률 스피커라고 하더라도 플로어형 모델보다는, 8인치 이하의 고능률 풀레인지 스피커(임피던스는 6Ω 또는 8Ω)와 조합하는 데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80dB 수준의 저능률 스피커와의 조합을 생각하고 있는 애호가라면, TRV-A300SE보다는 TRV-A300SE모노럴 파워앰프 또는 VP-300BD 스테레오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TRV-A300SE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는 앰프인가? 그런데 이번 시청에서 필자는 아주 특별한 스피커 두 조를 가지고 이 앰프를 테스트했다. 필자의 메인 스피커인 일렉트로 보이스의 파트리션 60(12인치 풀레인지 드라이버 장착, 16Ω. 미송 인클로저 김박중 제작), 그리고 최근 필자가 레퍼런스로 구입한 4인치 풀레인지 스피커 (제조사, 모델명 불명, 8?)등 두조의 스피커를 가지고 TRV-A300SE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시청에서 TRV-A300SE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스피커는 파트리션 60보다는 4인치 풀레인지 스피커였다. 이러한 결과는 TRV-A300SE와 파트리션 60의 임피던스가 8Ω 16Ω으로 서로 매칭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시청에서 TRV-A300SE이 들려주는 음향은 장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4인치 풀레인지스피커로 오면, 음향의 흐름과 다이내믹에 안정감이 생기고, 음향 이미지의 초점이 제대로 잡히는 모습이 살아나며, 음향 무대의 심도 표현 또한 한층 향상되면서, 음악의 표정을 섬세하고 미려하게 포착해 내는 모습을 이번 시청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인치 풀에인지스피커와의 조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중 고 음역에서 소박한 표정으로 떠오르는, 300B 특유의 화려한 색채표현과 관능이 넘치는 선율선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장쾌한 폭발력, 화려한 색채표현, 요염하기 짝이 없는 선율선 등이 혼연일체로 어우러지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음향 세계를 적극적으로 연출하는 것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리 크지 않은 음향 무대 속에 음악을 편안하게 보듬는 듯한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음향을 아기자기하게 새겨 넣는 300B 싱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가 바로 트라이어드의 TRV-A300SE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한마디로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300B 앰프 특유의 순도 높은 음색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애호가를 위한 앰프라고 할 수 있다. [ 발췌 : 2008년 11월 AUDIO 박성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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